제3장

서남윤은 그 말을 듣고 손을 거두었다.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얼굴이 새빨개진 김서아를 보았다. 누가 봐도 체온이 정상이 아니었다. “차 가져올게. 바로 병원 가자.”

서남윤은 서북현과 함께 김서아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2층 침실.

서미희는 침대에 누워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밤새도록 몸이 솜털처럼 가벼워지는 느낌과 함께 악몽에 시달렸다.

다음 날, 서미희의 핸드폰에서 끊임없이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깬 서미희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핸드폰을 켰다. 어떤 앱에서 온 개인 메시지 알림이었다.

그녀가 확인해 보니, 거의 전부가 욕설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런 욕설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어젯밤 그녀가 김서아를 밀어 물에 빠뜨리는 과정이 누군가에 의해 에브리타임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김서아는 학교에서 인기가 많았고, 그들은 모두 의분에 차서 그녀에게 욕을 퍼붓고 있었다.

서미희는 머리가 터질 듯 아파왔다. 그녀는 직접 키보드 배틀에 참전했다.

‘느금마’를 주어로, 친척과 생식기를 형용사 삼아 쌍욕을 한 바가지 쏟아부었다.

게시글의 댓글은 순식간에 수천 개로 불어났고, 관리자는 포럼이 해킹당한 줄 알고 식겁했다.

서미희는 메시지를 보낸 뒤 핸드폰을 휙 던져버리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어차피 이제 서씨 집안 사람들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고, 평판 따위 신경 쓸 이유도 없었다.

더는 이렇게 답답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가사도우미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일어나서 학교 가셔야죠. 늦겠어요.”

응?

서미희는 오늘 정말로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녀는 찬물로 세수하며 정신을 차렸다.

서씨 집안에서 벗어나려면 학업을 마치고 대학교에 합격해서 이곳을 멀리 떠나야만 했다.

그녀는 교복으로 갈아입고 책가방을 멘 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서남윤과 서북현이 마침 밖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서남윤은 서미희의 얼굴에 약간 홍조가 도는 것을 보고 곧장 다가가 습관적으로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어 체온을 재려 했다.

하지만 서미희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서남윤의 손을 피하고는 몸을 돌려 식당으로 가 자리에 앉았다.

밥을 든든히 먹어야 빨리 나을 수 있고, 연성대에 갈 힘을 내서 공부할 수 있었다.

서남윤의 손은 허공에 멈췄다가 어색하게 내려왔다.

서북현이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내가 쟤 배은망덕한 년이라고 했잖아. 그리고 몸은 소처럼 튼튼해서 어디 서아 같아야지. 서아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어젯밤 물에 빠졌다고 바로 감기몸살에 걸렸는데. 누가 아파도 서미희는 안 아플걸!”

서남윤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서미희는 늘 건강했다.

그는 식탁으로 다가가 말했다. “서아가 아프다. 며칠 동안 학교에서 네가 잘 돌봐줘. 다 나을 때까지. 알겠어?”

그는 서미희가 점점 삐뚤어지는 것 같아 예전처럼 마냥 예뻐해 주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서미희가 은혜를 모른다면, 억지로라도 배우게 할 생각이었다.

서북현이 말을 보탰다. “서미희, 서아 아버지가 네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넌 하마터면 서아를 죽일 뻔했어. 서아를 잘 돌봐야 네 죄를 씻을 수 있는 거야!”

서미희는 고개를 숙이고 아침 식사에 집중했다. 입맛은 없었지만 억지로 먹었다.

수능까지 백일도 남지 않았다. 시험만 끝나면 서씨 집안을 떠날 수 있었다.

서북현은 그녀의 무반응에 불만을 품고 그녀의 젓가락을 확 낚아챘다. “너한테 말하잖아, 귀 없어?”

서미희가 고개를 들자, 흑백이 분명한 눈동자가 고요하게 그를 응시했다.

서북현의 말투에는 명령조가 섞여 있었다. “서아가 약 먹을 때 네가 가서 뜨거운 물 떠다 줘. 점심때는 대신 식당 가서 밥 타 오고. 빨리 뛰어서 밥 식지 않게 해. 화장실 가는 거 불편할 테니 너도 같이 가주고! 서아 아버지가 네 목숨을 구했으니 이건 네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야. 똑똑히 들었어?”

서미희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똑똑히 들었어요.”

하지만 그대로 하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었다.

서미희는 무표정하게 빌라를 걸어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억지로 삼켰다.

다시 한번 살게 되었으니 더는 슬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금 북현 오빠의 말을 듣자 심장이 바늘로 찔리는 것처럼 아팠다.

어릴 적 자신이 아팠을 때, 둘째 오빠 서남윤은 밤새 곁을 지켜주었고 넷째 오빠 서북현은 농담을 하며 약을 먹으라고 달래주었던 기억이 났다.

단지 김서아의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그녀가 아플 때마다 오빠들은 가장 먼저 그녀를 챙겼다.

나중에는 열이 나도 혼자 끙끙 앓아야만 했다.

서미희는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쓴맛을 삼키고 차에 올라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조금만 더 참자. 이제 백일도 채 남지 않았다.

그녀는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고3 교실로 향했다.

그녀가 교실로 들어서자, 시끄럽던 교실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방금 전 서미희가 학교 게시판에서 욕설을 퍼부은 전적이 이미 온 학교에 퍼진 뒤였다.

모두들 서미희가 정신병이라도 걸린 게 아닌지 의심했다.

“서미희 대체 무슨 충격을 받았길래 저렇게 자포자기한 거지?”

“보아하니 더는 이미지 세탁이 안 되니까 그냥 본색을 드러낸 거겠지. 저게 서미희 본모습이야.”

서미희는 주위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 책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책상에 바로 엎드려 잠을 청했다.

오전 내내 서미희는 잠만 잤다.

점심시간이 되자 김서아가 교실로 찾아왔다.

김서아의 손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다. 그녀가 나타나자마자 순식간에 반 친구들의 동정과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서미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자세를 바꿔 계속 잠을 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그녀의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서미희가 짜증스럽게 고개를 들자, 흑백이 분명한 눈동자에 살기가 어렸다.

그녀의 눈앞에는 김서아가 서 있었고, 그 옆의 쫄따구들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미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두 여자는 김서아의 쫄따구들로, 평소 헛소문을 퍼뜨리며 그녀를 집단으로 괴롭히고, 증거까지 조작해 오빠들에게 고자질하기 일쑤였다.

김서아가 힘없이 입을 열었다. “미희 언니, 점심 뭐 먹고 싶어? 내가 대신 밥 타다 줄게. 나한테 화 풀면 안 될까?”

서미희가 차갑게 대답했다. “필요 없어.”

쫄따구 1호가 버럭 소리쳤다. “서미희, 너 진짜 호의를 베풀어주니까 권리인 줄 아네? 서아는 지금 환자라고.”

“맞아. 서미희, 네가 당연히 학교에서 서아의 모든 걸 챙겨줘야지. 너 때문에 아픈 거잖아.”

김서아가 힘없이 콜록거리며 말했다. “너희들 그러지 마. 나 혼자 괜찮아. 예전에도 계속 혼자였는걸. 더는 말하지 마. 언니 화낼라.”

“서아, 넌 너무 착해서 이렇게 당하고만 사는 거야.”

서미희는 짜증이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나가려 했다.

그녀가 막 교실을 나서자, 김서아가 갑자기 달려들었고, 그 바람에 링거 거치대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공교롭게도 김서아는 깨진 병 위로 넘어졌다.

기가 막힌 우연이 아닐 수 없었다.

교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서미희는 시끄러운 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녀가 막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며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서미희가 깨어났을 때, 코끝에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다.

여기는 학교 보건실인가?

“체온 39도. 이렇게까지 버틴 건 인체 자연 발화라도 체험하고 싶었나?”

서미희가 고개를 돌리자,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보였다. 길고 호리호리한 몸매에 마스크를 썼지만, 눈매는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그가 새로 온 보건교사라는 것을 기억해 냈다. 잘생긴 외모로 꽤 많은 여학생의 관심을 끌었지만, 입이 아주 험했다.

이 보건교사는 얼마 안 있다가 떠난 것 같았다.

서미희는 몸을 일으켰다. 링거 덕분인지 한결 나아진 기분이었다.

그녀는 눈꺼풀을 내리깔며 말했다. “이제 가봐도 되죠?”

“보호자 올 때까지 기다려. 길에서 죽기라도 하면 내가 책임지기 싫으니까.”

주우지는 의자에 앉아 한없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독설가 보건교사였다.

그녀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가족 없어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밖에서 서북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아, 괜찮아? 왜 이렇게 심하게 다쳤어?”

“북현 오빠, 그냥 찰과상일 뿐이야. 미희 언니 탓하지 마. 언니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조심성이 없어서, 발을 헛디뎌서 링거대를 넘어뜨린 거야.”

쫄따구 1호가 기름을 부었다. “아니에요. 분명히 서아가 일부러 서미희 밥 타주겠다고 했는데, 서미희가 거절하고는 앙심을 품고 일부러 서아를 발로 걸어 넘어뜨렸어요. 저희가 다 봤어요.”

쫄따구 2호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서아는 자기도 아픈데 서미희 밥 못 먹을까 봐 챙겨준 건데, 서미희가 이렇게 악독하게 밀어버리다니!”

그 말을 들은 서북현의 마음속 분노가 확 타올랐다.

그가 분노를 억누른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서미희 어디 있어? 당장 기어 나와! 네가 어떻게 서아한테 밥을 타달라고 할 수가 있어? 서아 아버지는 차라리 그때 널 그 교통사고로 죽게 내버려 뒀어야 했어. 살아서 자기 딸을 이렇게 괴롭히게 할 바에야.”

서미희는 그 말을 듣고 입꼬리를 비틀며 비웃음을 흘렸다.

역시 전생과 똑같았다. 김서아가 하는 말은 뭐든 진실이 되었다.

다음 순간, 서미희 옆의 커튼이 거칠게 열렸다.

서미희가 고개를 들자, 창백한 작은 얼굴에 입술은 하얗게 터서 일어나 있었고, 온몸이 병색으로 가득했다.

“서미희 너….”

서북현은 서미희의 모습을 보고 나머지 말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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